2026-01-15 20:03:00
이 대통령, 중국에 ‘판다 추가 대여’ 요청에
양국 실무 협의 중… ‘동물 외교’ 관행 도마
역대 ‘외교 사절관’ 동물들, 끝은 ‘동물원행’
“후원자 예우 등 ‘생물 이동 없는’ 대안을”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가 일반인 공개 마지막 날인 2024년 3월 3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대나무 장난감을 안고 누워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중국이 우리한테 줄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푸바오라도 줘라’ 한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7일, 상하이 동행 기자단 간담회)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7일 중국 국빈 방문 마지막 날 기자간담회에서 한중 정상회담의 깜짝 이슈였던 ‘판다 추가 대여 요청’의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석사자상을 중국에 반환했으니, 2년 전 중국에 돌아간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를 다시 데려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중 양국은 이미 판다 추가 대여를 위한 실무 협의에 한창이지만, 동시에 동물을 교환의 대상으로 여기는 ‘동물 외교’ 관행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동물권 단체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주고받는 외교 관행이 시대역행적이라며 ‘대여 요청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판다가 실제로 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양국 우호 증진 차원에서 판다 한 쌍을 대여해 달라고 요청하며 광주 우치 동물원을 사육장소로 언급했다. 중국도 화답하자 현재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외교부가 실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아직 판다 추가 대여 여부가 확정되진 않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대여 대상이 푸바오가 될지도 관심이다. 2016년 중국에서 대여 형식으로 들어온 판다 아이바오와 러바오가 2020년 낳은 새끼인 푸바오는 3년여간 에버랜드에서 엄마, 아빠와 지내다 2024년 4월 중국으로 돌아갔다. 타국에 임대해 준 판다가 중국 밖에서 새끼를 낳으면 이를 자국 소유로 간주해 4세가 될 때 돌려받는 규정 때문이다.
‘푸바오 팬’들은 푸바오가 돌아올까 한껏 기대하고 있다. 중국 내 생육환경개선 등을 요구하며 수요 피켓집회를 해온 불씨 캠페인, 푸바오보호연합은 16일 중국대사관 근처에서 ‘푸바오 한국 재임대 촉구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북한 풍산개, 중국 따오기, 투르크 국견까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11월 청와대 관저에서 풍산개 ‘곰이’를 쓰다듬고 있다. 연합뉴스
동물 외교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이어졌다.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에게 기린을, 당나라 측천무후가 일본 왕실에 판다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외교적 ‘소프트 파워'(군사·경제력이 아닌 문화 등으로 상대국을 호감을 얻는 것)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 국가의 희귀동물을 상대국에 보내는 형태가 자리 잡았다. 중국은 ‘판다 외교’를, 호주는 ‘코알라 외교’를 내세운다.
우리나라도 역대 정부를 거치며 다양한 동물을 선물 받거나 대여했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중국에서 판다 한 쌍(리리 밍밍)을 임대해 온 것이 대표적인 동물 외교의 시작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풍산개 두 마리(우리 두리)와 한국 진돗개를 맞바꿨고, 이명박 정부에선 2008년 중국 따오기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도 2016년 3월 중국에서 판다 한 쌍(아이바오 러바오)을 대여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북한에서 풍산개 두 마리(곰이 송강)를 받았으며, 반려동물 11마리와 함께 살던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견 알라바이 2마리(해피 조이)를 한남동 관저로 데려왔다.
결국은 동물원행… 인간 맞춤 ‘전시용’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4년 6월 10일 투르크메니스탄 아시가바트 한 호텔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견인 알라바이를 안아 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때 ‘외교 사절관’으로 환대받은 동물들의 여생은 어떨까. 대부분 반짝 관심을 받은 뒤 동물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풍산개 우리와 두리는 2000년 한국 땅을 밟은 지 반년 만에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고 2014년 자연사했다. 풍산개 곰이와 송강은 문 전 대통령이 퇴임 뒤 기르다가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갔고 새끼들은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흩어졌으며 그중 두 마리는 통일전망대로 보내졌다. 투르크 국견 해피와 조이도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다. 사실상 ‘전시용 동물’로 전락한 것이다.
비용 탓에 애물단지가 된 동물도 있다. 판다 리리와 밍밍은 1994년 10년 임대 조건으로 들어왔지만 1998년 외환위기 때 관리비 부담으로 4년 만에 조기반환됐다. 중국은 ‘판다 보호기금’ 명목으로 판다 한 쌍에 연간 10억여 원 수준의 임대료를 받는다.
동물권 단체들은 외교와 동물의 성질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김영환 정책교육구호그룹 국장은 “동물의 삶은 동물이 주체적으로 가지고 있기에 언제든 급변할 수 있는 외교의 수단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50여 년 전 중국 판다를 처음 받았던 일본은 최근 중일 갈등이 깊어지자 판다 두 마리를 반환 기한보다 한 달 빨리 중국에 반납했다.
“새 정부 ‘동물복지’ 국정과제와도 모순”
2024년 3월 푸바오가 중국 반환을 앞두고 검역과 건강관리를 위해 내실에서 지내고 있다. 에버랜드 제공
동물보호계에선 “외교는 오롯이 사람끼리만 해야 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①국가를 오갈 때의 수송과 적응 과정이 개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며 ②생물다양성 연구의 명분도 부족하며 ③돈벌이 수단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아무리 공영 동물원이 민간보다 낫다고 한들 사육 환경이 원서식지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판다 외교의 명분인 공동연구의 성과가 드러난 것이 거의 없다”며 “인공 상태에서 사육하는 개체 수만 늘리는 건 보존과 하등 상관이 없다”고 짚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성과 엇박자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정부가 처음으로 ‘동물복지’를 국정과제에 포함해놓고도 외교 수단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올해부터 시행된 ‘곰 사육 금지법'(개정 야생생물법)을 거론하며 “여전히 사육 곰 119마리가 농가에 남아있다”며 “정부가 예산·시설을 확보해 해당 곰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판다 대여’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국가가 동물을 다룰 원칙과 철학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형주 대표는 “철학이 있으면 ‘우리 원칙에 반한다’며 거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생물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외교적 성과를 이룰 대안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가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 방문 당시 쇤브룬 동물원의 시베리아 호랑이 후원자로 예우한 전례가 있다.
강지수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