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4 20:16:00
2000년대 밀레니엄과 함께 명품 대중화 시대로 인스타·틱톡 등 대형 플랫폼 기생하며 규모 확장 2024년 10만2천여건 적발… 2022년 전년비 262%↑ 홍보 양지화·거래 음지화 더 치밀해지고 대담해져 알고리즘 타고 무차별 유포… 유튜브 호객꾼 자처 약한 처벌에 배짱 영업… 가품 판매 노란천막 반복
1980년대 남대문 시장 일대. 국민방송(KTV) 캡처
‘돈은 부족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좋은 물건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서 탄생한 짝퉁. 이를 판매하는 짝퉁 시장은 경제 성장과 맞물려 노점에서 시장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로,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SNS 플랫폼으로 뻗어갔다. 그리고 좌판에서 ‘정품’이라고 속이며 조심히 팔던 영업 방식은 SNS의 ‘익명성’을 방패 삼아 짝퉁을 당당히 판매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 [1980s] 미제(美製)를 향한 동경…‘수출용 로스분’의 탄생
온 국민이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3S(Screen, Sports, Sex) 정책과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유치는 국민에게 ‘브랜드’라는 새로운 문물을 각인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당시 대중의 시선은 바다 건너 ‘미제’로 향했다. ‘나이키(Nike)’ 코르테즈와 ‘리복(Reebok)’ 프리스타일 운동화 한 켤레가 부의 척도이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권력의 상징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동자 월급으로 3~4만 원을 호가하는 정품 운동화를 구매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이 틈을 파고든 곳이 바로 이태원과 남대문 시장이었다.
거리의 상인들은 이를 짝퉁이라 부르지 않았다. “수출 물량을 맞추고 남은 ‘로스(Loss)분’”, “단추 하나가 잘못 달려 검수에서 제외된 정품”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입혔다. 미군 부대가 인접한 이태원 시장과 좌판이 깔린 남대문 시장에서는 ‘NICE(나이스)’, 영문 스펠링을 변조한 조잡한 품질의 제품부터, 실제 공장에서 유출된 자재로 만든 ‘A급 가품’까지 유통됐다. 지식재산권 개념이 희박했던 80년대의 짝퉁은 가난하지만 안목은 높아진 서민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이자, 시대를 위로하는 수단이었다.
■[1990s] X세대와 로고 전쟁…‘노란 천막’의 전성시대

소위 ‘노란천막’이라고 불리는 서울 동대문구 ‘새빛시장’에 짝퉁을 구매하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관세청 제공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등장한 ‘X세대’와 ‘오렌지족’은 소비의 주체를 기성세대에서 1020세대로 전환시켰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폭발은 패션 시장을 뒤흔들었다. 이때부터 짝퉁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로고(Logo)’로 이동했다. 의류의 재질보다 전면에 배치된 영문 로고가 주류 무리에 속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게스(GUESS), 미치코런던, 스톰(292513=STORM), 보이런던, 겟유즈드.
당시 청소년들에게 이 브랜드들은 교복 위에 걸치는 또 하나의 계급장이었다.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 주변에 들어선 노점상, 일명 ‘노란 천막’은 왜곡된 욕망의 상징이었다. 밤 10시가 되면 백열등이 켜지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도매상과 10대들로 시장은 불야성을 이뤘다.
이곳에서는 정품 티셔츠 한 장 가격으로 가품 서너 장을 구매할 수 있었다. 국내 영세 공장들은 유행하는 브랜드의 로고 서체를 변형하거나, 색상만 바꾼 ‘카피 제품’을 양산했다. 90년대 짝퉁은 비행 청소년들의 유니폼이자, 주류 문화에 편입되고자 하는 10대들의 몸부림이었다.
■[2000s~2010s] ‘3초 백’과 명품의 대중화… 짝퉁, 양지로 스며들다

2000년대 초중반 일명 ‘3초백’으로 불린 명품 가방. 각 브랜드 홈페이지 이미지 캡처
2000년대 밀레니엄과 함께 해외여행이 정착되고 신용카드 발급량이 대폭 증대되면서 국내 소비 패턴은 ‘캐주얼’에서 ‘럭셔리’로 상향 이동했다. 바야흐로 ‘명품 대중화’의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 짝퉁 시장의 역사를 상징하는 단어는 ‘3초 백’이다. 거리에서 3초마다 목격된다는 루이비통 스피디 백, 구찌 자카드 백의 유행은 한국이 명실상부한 ‘짝퉁 소비국’이 되었음을 방증했다. “강남 부유층도 마트에 갈 땐 짝퉁을 든다”는 말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면서, 가품 사용에 대한 도덕적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0년대부터는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오픈마켓’과 ‘포털 카페’가 짝퉁 유통의 숙주가 됐다. ‘동대문 언니’, ‘홍콩 명품’ 등의 간판을 건 온라인 판매업자들은 “현지 공장에서 직수입한 커스텀급(주문 제작)”이라며 소비자를 유혹했다.
이때부터 사진은 정품을 게시하고 배송은 가품을 보내는 ‘낚시형 사기’가 급증했고, 단속을 피하고자 서버를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하는 등 범죄의 지능화가 시작됐다.
■ [2020년~] 알고리즘 카르텔, “유튜브가 꼬시고 카카오톡이 낚는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현재의 짝퉁 시장은 전문가조차 식별하기 어려운 ‘SA급(Super A급)’, ‘미러급’, ‘레플리카(Replica)’라는 명칭으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하이엔드 짝퉁’을 찾는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지식재산권 침해물품 적발 규모에 대한 그래프. 그래픽=유동수 화백
관세청이 발표한 ‘2024 지식재산권 침해 단속 연간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적발된 위조 물품은 총 10만2천219건이다. 2022년 전년 대비 262.74% 폭증한 이래 꾸준히 8만5천~10만여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유통망이다. 과거 음지에 숨어있던 짝퉁은 이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대형 플랫폼에 기생하며 규모를 확장시켰다. 적발 건수의 85%(8만 6천873건)가 해외직구 등 비대면 전자상거래를 통해 유입됐다는 점은 짝퉁 시장의 판도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갔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2026년. 현재의 짝퉁 카르텔은 ‘홍보의 양지화’, ‘거래의 음지화’로 더 치밀해지고 대담해졌다.
유튜브는 21세기판 ‘호객꾼’ 역할을 자처한다. 화려한 편집과 배경음악, 명품 언박싱으로 무장한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유포된다. 판매자들은 장갑을 낀 손으로 박음질을 보여주며 “정품 싱크로율 99.9%”, “전문 감정사도 식별 불가”, “세관 100% 통과 보장”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구매 경로 및 가격 문의는 고정 댓글 링크 확인”이라며 홍보한다.
링크를 통해 연결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텔레그램 비밀방은 법망이 닿지 않는 ‘접선 장소’다. 대화방에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공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는 속아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가품임을 인지해도 “외관상 진품과 구분이 어렵다면 문제없다”며 지갑을 연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일명 ‘미러급 가방’을 판매하고 있는 한 짝퉁 판매업자. 유튜브 영상 캡처

한 짝퉁 판매업자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 제목. 유튜브 캡처
판매자들의 태도 또한 대담하다. 자신들이 판매하는 제품을 ‘정품급’, ‘미러급’이라고 소개하며 “정품 매장에 들고 가도 모른다”라고 홍보한다. 거래 과정에서 대포통장 사용이 의심되는 정황도 포착됐다. 실제 그들이 제시한 계좌 예금주는 낯선 외국인이나 법인 명의다. 서버는 해외에 두고, 명의는 특정할 수 없는 제삼자에게 돌려 자금을 세탁한다. 수사기관이 뒤늦게 판매 게시글을 추적해도 남는 건 유령 계좌’뿐이다. 2025년 대한민국 수사망이 짝퉁 카르텔 앞에서 무력한 이유다.
■ 막을 방법은 없나… 뒤틀린 심리와 플랫폼의 ‘직무 유기’
2030 세대에게 짝퉁 구매는 더 이상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다. 소위 ‘듀프(Dupe·복제품)’ 소비라는 트렌드로 포장되기도 한다. “짝퉁을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라고 착각하는 도덕적 해이가 시장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품 리셀(재판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상에 대한 반발 심리 또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현행 상표법은 위조상품 판매 적발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형 업자들에게 벌금은 ‘세금’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상표법 전문 변호사는 “초범은 집행유예, 재범도 약식 기소 벌금형에 그치는 게 현실”이라며 “‘적발되면 벌금을 내고, 상호만 바꿔 다시 영업하면 된다’는 배짱 영업이 만연하다”고 꼬집었다. 실제 최근 5년간 상표법 위반 사건 가운데 실형 선고 비율은 0.6%에 불과하다.
짝퉁 판매 라이브 방송을 사실상 방치하는 대형 플랫폼의 태도도 문제로 꼽힌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은 표면적으로 “위조상품 판매를 금지하며 모니터링한다”는 규정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짝퉁 판매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코리아 측은 플랫폼이 짝퉁 판매의 무대로 악용되고 있는 데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경기α팀의 질의에 “커뮤니티 가이드를 위반하는 콘텐츠는 신속하게 삭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현재 머신 러닝(기계 학습)과 전문 검토 인력을 함께 활용해 정책을 집행 중이며, 불법 또는 규제 상품 정책에 따라 판매 목적 콘텐츠는 허용되지 않고 위반 채널은 삭제 조치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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