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2 18:05:00
김경희 정치부 차장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나라를 뒤덮었을 때 기자들에겐 논제 하나가 던져졌다.
시작은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청장의 브리핑에서 시작됐다.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모르는 감염을 일컬어 ‘깜깜이 감염’이라 부르던 걸 ‘감염 경로 불명’으로 칭하겠다고 한 뒤부터다. ‘깜깜이’가 장애 차별적 발언이라는 게 이유다.
얼마 전 제목에 그 단어를 썼다. 선거 관련 기사에서다. 다시 돌아온 선거철, 그 단어가 가장 잦게 등장하는 시기를 맞아 한번은 ‘깜깜이’가 정말 차별적 단어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깜깜이는 깜깜하다라는 형용사가 명사화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원인 깜깜하다의 표준국어대사전상 의미는 ‘아주 까맣게 어둡다’, ‘희망이 없는 상태에 있다’, ‘어떤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잊은 상태’다. 깜깜이는 국어사전에 올라 있진 않지만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사전인 우리말샘에 ‘어떤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행위, 또는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돼 있다.
정은경 청장이 썼던 ‘불명’을 한글로 푼 것과 뜻이 같다. 아니 불에 밝을 명, 밝지 않다, 즉 어둡다는 뜻이다.
뜻 어디에도 차별적 표현이 보이지 않다. 어둡다는 게 곧 차별을 뜻한다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서 차별을 찾아야 할까. 과거 자주 쓰기도 했던 ‘눈 먼 돈’이나 ‘절름발이 행정’, ‘귀머거리 기관’ 같은 표현과는 다르지 않나.
누군가 특정 단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면 가끔 그 단어를 사용하는 자체로 인식에 문제가 있는 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살을 자살로 쓰면 제재를 받고 ‘극단적 선택’으로 써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극단적이라 해도 생명을 선택으로 끝낼 수 있다고 여기게 하는 단어가 더 문제 아닐까란 생각이 들던 날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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